제105문 : 다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답 :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는 다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를 거저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하는데, 우리가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담대히 이를 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번에 모든 것이 다 주께로부터 오기 때문에 우리는 땅의 모든 필요를 위해서도 그분께 구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땅에 있는 우리들이 구해야 할 것으로 가르쳐 주신 것에는 육신의 필요와 영혼의 필요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땅에 살면서 땅의 것을 먹고 마시고 입고 살아가기 때문에 땅의 것을 하나님께 구해야 하고, 그 땅의 것을 구하면서 땅의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감사합니다. 이런 넷째 간구를 통해서 우리 육신의 양식을 구하라 하셨다면, 이제 다섯째 간구를 통해서는 영혼의 양식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먹는 것과 죄를 일용할 양식과 죄를 용서 받는 것이 함께 나타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매일 양식을 먹는 것처럼 매일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매일의 양식처럼 매일의 죄 용서가 필요합니다.
1. 오해된 회개 교리
초창기 교회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죄 씻음 받는다는 것을 믿었고, 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받는 죄 씻음은 너무도 강력한 것이어서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세례 이후의 삶은 완전히 정결하여 다시는 죄에 빠져들어 가지 않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회심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교회 안에 온갖 죄를 가진 사람들이 회원이 되어 들어오기 시작했고, 필연적으로 이 사람들 안에는 회심하여 신자가 된 후에도 종종 죄에 빠지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세례의 위대함 때문에 세례를 통해서 죄가 씻음 받는다는 사실에만 집착하여 그 세례가 이전에 살아오면서 지었던 모든 죄악을 다 씻어준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것이 세례후의 삶에서 어떤 영향력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세례는 세례 이전의 죄만 사해주고 이후에 지은 죄는 세례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최대한 세례를 연기하는 풍조가 생겨났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 때부터 신자가 되고 유아세례를 받게 되자 이런 방식으로 세례의 연기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례이후에도 죄를 짓게 되는 상황이 계속하여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죄’와 ‘큰 죄’를 구분하는 습관이 생겼으며, 이런 죄들을 사함받기 위한 장치들을 교회 안에 만들었는데 ‘고해’(告解: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받기 위하여 하느님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고백하여 용서를 받는 일)나 ‘보속’(補贖:죄에 대한 벌을 받음으로써 그 죄로 인한 나쁜 결과를 보상함)이나 ‘참회’(懺悔: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빔)와 같은 것들입니다. 결국 교회 안에서 죄사함이란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해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참회나 고행을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무거운 죄는 그리스도에 의해 용서되지만, 가벼운 죄는 신자들 자신이 배상할 수 있다고 굳어져 간 것입니다. 면죄부와 같은 것도 사실상, 이런 이해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2. 매일의 회개
종교개혁을 시작한 동기가 되었던 마틴 루터의 95개조항의 제일 첫 번째 문제가 바로 이 매일의 죄사함과 관련되어있습니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하셨을 때, 이는 신자들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번의 죽으심으로 우리 모든 죄가 사해졌는데 왜 매일 죄사함이 필요합니까? 이에 대해 구원파는 “회개는 일생에 단 한 번만 하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회개하면 구원받지 못한 증거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신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신자가 될 때 이미 모든 죄를 씻음 받은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씻음 받을 죄가 없게 되므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반대로 만약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죄가 모두 다 씻음 받은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내가 살아가면서 회개를 통하여 죄 씻음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의 ‘죄 씻음’은 나의 행위에 의한 ‘공로’가 됩니다. 결국 우리 죄가 예수님 때문에 용서함 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회개행위를 통해서 사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가르침 모두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어떻게 사해지며, 또 매일의 죄사함을 청원하는 기도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지 분명히 알아야만 합니다.
3. 신자 됨과 회개
우리가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구원을 다 이루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완전한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의 성격은 한 번 받은 구원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이루어가야 할 구원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한순간에 완성되어 완전해지도록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신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는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이 세상에 살면서 끊임없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불완전한 순종을 더욱 완전케 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해 힘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회개란 단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아나는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신자가 된다는 것은 칭의(稱義)를 통해서 모든 것을 다 얻었으니 끝났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고 로마서에서 거듭 강조하여 말하면서도 야고보서 같은 곳에서는 행위가 따르지 않는 것은 가짜 구원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런 성격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신 것이 근본적으로 칭의를 통해 의롭게 된 사람이 성화(聖化)를 통해 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동반하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칭의나 성화 중에 하나가 부족하다면 그 사람은 다른 하나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회개란 신자가 중생(重生)을 통해 새롭게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전체적 삶의 관점에서는 이전에 죄를 향해 달려가는 삶이 완전히 변하여 새롭게 된 길로 들어서서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정체성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고, 또한 매일의 삶의 차원에서는 때때로 내가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육체의 습관들이 죄로 나타나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거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방향으로 드러날 때는 그것을 슬퍼하고 미워하면서 뿌리 뽑으려고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를 이렇게 이해할 때 우리는 잘못되게 가르치는 이단들과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구원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회개해야만 합니다. 한번 완전한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매일의 죄에 대해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사함을 받았는데 계속해서 자신의 삶에 부주의와 연약함이 나타나기 때문에 끝없이 그것을 바로 잡으며 회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정말 매일 매일 회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제105문 : 다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답 :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는 다섯 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를 거저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하는데, 우리가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담대히 이를 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번에 모든 것이 다 주께로부터 오기 때문에 우리는 땅의 모든 필요를 위해서도 그분께 구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땅에 있는 우리들이 구해야 할 것으로 가르쳐 주신 것에는 육신의 필요와 영혼의 필요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땅에 살면서 땅의 것을 먹고 마시고 입고 살아가기 때문에 땅의 것을 하나님께 구해야 하고, 그 땅의 것을 구하면서 땅의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감사합니다. 이런 넷째 간구를 통해서 우리 육신의 양식을 구하라 하셨다면, 이제 다섯째 간구를 통해서는 영혼의 양식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먹는 것과 죄를 일용할 양식과 죄를 용서 받는 것이 함께 나타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매일 양식을 먹는 것처럼 매일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매일의 양식처럼 매일의 죄 용서가 필요합니다.
1. 오해된 회개 교리
초창기 교회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죄 씻음 받는다는 것을 믿었고, 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받는 죄 씻음은 너무도 강력한 것이어서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세례 이후의 삶은 완전히 정결하여 다시는 죄에 빠져들어 가지 않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회심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교회 안에 온갖 죄를 가진 사람들이 회원이 되어 들어오기 시작했고, 필연적으로 이 사람들 안에는 회심하여 신자가 된 후에도 종종 죄에 빠지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세례의 위대함 때문에 세례를 통해서 죄가 씻음 받는다는 사실에만 집착하여 그 세례가 이전에 살아오면서 지었던 모든 죄악을 다 씻어준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것이 세례후의 삶에서 어떤 영향력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세례는 세례 이전의 죄만 사해주고 이후에 지은 죄는 세례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최대한 세례를 연기하는 풍조가 생겨났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 때부터 신자가 되고 유아세례를 받게 되자 이런 방식으로 세례의 연기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례이후에도 죄를 짓게 되는 상황이 계속하여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죄’와 ‘큰 죄’를 구분하는 습관이 생겼으며, 이런 죄들을 사함받기 위한 장치들을 교회 안에 만들었는데 ‘고해’(告解: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받기 위하여 하느님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고백하여 용서를 받는 일)나 ‘보속’(補贖:죄에 대한 벌을 받음으로써 그 죄로 인한 나쁜 결과를 보상함)이나 ‘참회’(懺悔: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빔)와 같은 것들입니다. 결국 교회 안에서 죄사함이란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해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참회나 고행을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무거운 죄는 그리스도에 의해 용서되지만, 가벼운 죄는 신자들 자신이 배상할 수 있다고 굳어져 간 것입니다. 면죄부와 같은 것도 사실상, 이런 이해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2. 매일의 회개
종교개혁을 시작한 동기가 되었던 마틴 루터의 95개조항의 제일 첫 번째 문제가 바로 이 매일의 죄사함과 관련되어있습니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하셨을 때, 이는 신자들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번의 죽으심으로 우리 모든 죄가 사해졌는데 왜 매일 죄사함이 필요합니까? 이에 대해 구원파는 “회개는 일생에 단 한 번만 하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회개하면 구원받지 못한 증거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신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신자가 될 때 이미 모든 죄를 씻음 받은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씻음 받을 죄가 없게 되므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반대로 만약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죄가 모두 다 씻음 받은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내가 살아가면서 회개를 통하여 죄 씻음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의 ‘죄 씻음’은 나의 행위에 의한 ‘공로’가 됩니다. 결국 우리 죄가 예수님 때문에 용서함 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회개행위를 통해서 사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가르침 모두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어떻게 사해지며, 또 매일의 죄사함을 청원하는 기도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지 분명히 알아야만 합니다.
3. 신자 됨과 회개
우리가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구원을 다 이루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완전한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의 성격은 한 번 받은 구원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이루어가야 할 구원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한순간에 완성되어 완전해지도록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신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는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이 세상에 살면서 끊임없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불완전한 순종을 더욱 완전케 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해 힘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회개란 단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아나는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신자가 된다는 것은 칭의(稱義)를 통해서 모든 것을 다 얻었으니 끝났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고 로마서에서 거듭 강조하여 말하면서도 야고보서 같은 곳에서는 행위가 따르지 않는 것은 가짜 구원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런 성격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신 것이 근본적으로 칭의를 통해 의롭게 된 사람이 성화(聖化)를 통해 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동반하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칭의나 성화 중에 하나가 부족하다면 그 사람은 다른 하나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회개란 신자가 중생(重生)을 통해 새롭게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전체적 삶의 관점에서는 이전에 죄를 향해 달려가는 삶이 완전히 변하여 새롭게 된 길로 들어서서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정체성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고, 또한 매일의 삶의 차원에서는 때때로 내가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육체의 습관들이 죄로 나타나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거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방향으로 드러날 때는 그것을 슬퍼하고 미워하면서 뿌리 뽑으려고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를 이렇게 이해할 때 우리는 잘못되게 가르치는 이단들과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구원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회개해야만 합니다. 한번 완전한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매일의 죄에 대해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사함을 받았는데 계속해서 자신의 삶에 부주의와 연약함이 나타나기 때문에 끝없이 그것을 바로 잡으며 회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정말 매일 매일 회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